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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걷자
[아침묵상 - 에스겔 23장 1-49절] 성경에서 여성에 대한 비하나 성적인 차별을 목격하는 일은 불가피합니다. 애써 그런 부분까지 변증하려 하다 보면 오히려 성경을 읽기 싫은 책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성경은 흠이 있으므로 가치 없는 책이라고 주장하는 일이나, 성경의 모든 흠을 완벽하게 변증해보려고 시도하는 일이나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 다 문자에 매인 ‘문자주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가 그분의 뜻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인간의 언어”로 기록한 책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는 당연히 오순절에 내린 방언과 같은 신령한 언어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언어는 그 언어를 배운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아쉽지만 성경에서 사용된 언어는 신령한 언어가 아니라 “고대, 팔레스타인..
[아침묵상 - 에스겔 22장 1-31절] 예언자의 중요한 임무는 죄에 대한 고발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한 죄에 대하여 기억나게 하는 역할, 그래서 사람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는 역할이 예언자의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일상생활에서 누군가가 예언자적인 사명을 품고 남들의 잘못을 꼬치꼬치 캐낸다면 그 사람의 주변인들은 매우 괴로울 것입니다. 특히, 나쁜 마음으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어쩔 수 없이 잘못을 범하게 된 경우에 그 누군가가 자기 잘못을 들춰내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다면 정말로 가혹하다고 느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게 선포하는 예언자들의 고발장은 그런 자질구레한 민사소송장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잘못을 캐내고, 힘없고 ..
[아침묵상 - 에스겔 20장 1-44절] 에스겔 20장은 이스라엘의 지난 역사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강조하며, 그동안의 참으심과 현재의 심판이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시려는 뜻에서 행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신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함이고, 심판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뒤집어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지은 죄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죄가 되겠습니다. 우상숭배, 율법과 안식일을 무시하는 일, 인신공양, 산당에서의 제사와 같은 모든 일의 핵심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행위였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잘못을 참으심으로써 자신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나타내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오래 참으심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신 것과..
[아침묵상 – 에스겔 19장 1-14절] 가슴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하여 시를 짓고 노래를 만들거나 자기 분야의 작품을 만들어서 기억하는 일은 예술가들의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그러한 예술가적 의무를 이행하도록 요청하셨습니다. 여호아하스(2-4절)와 여호야긴(5-9절)의 가슴 아픈 역사를 곱씹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때로는 망각이 유일한 대안인 순간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회피는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술을 이용하여 아픈 감정은 어루만지고, 그 역사에 담긴 교훈은 뼈에 새기는 승화의 과정을 이루도록 에스겔을 독려하셨습니다. 처칠이 “역사를 잊은 국가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는데, 이는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를 잊은 성도에게 구원은 ..
[아침묵상 - 에스겔 18장 1-32절] 아버지가 지은 죄 때문에 아들이 벌을 받는 것은 아버지가 지은 빚을 아들이 물려받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의 예언 중에도 조상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에 임했다는 내용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그중에 특히 므낫세 왕의 죄가 자주 거론되곤 합니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는 그런 상식과 반대되는 말씀을 선포합니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들이 벌 받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3절). 이와 같은 말씀은 에스겔과 함께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의 내적인 상황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마음의 분노를 조상들에게 향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한 마디로 “조상 탓” 하고..
[아침묵상 – 에스겔 17장 1-24절] 에스겔 17장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비유와 그 비유에 대한 해설을 담고 있는 장입니다. 에스겔은 3개월 동안 왕위에 있다가 포로로 끌려온 여호야긴과, 바벨론에게 대항하다가 예루살렘의 파멸을 자초한 시드기야의 역사를 비유를 통해 되짚어보면서 그 역사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두 마리의 독수리는 바벨론과 이집트라는 두 개의 거대한 권력을 상징하고, 이스라엘의 왕들은 각각 백향목 가지와 포도나무 가지로 표현되었습니다. 나중에 예루살렘을 회복할 때에도 백향목 가지가 시온산에 심어지게 됩니다(22절). 세상의 권력은 거대한 날개로 날아다니는데, 이스라엘은 꺾여버린 어린 순이나 위로 높이 자라지 못하는 덩굴나무 같은 신세입니다. 세상의 권력은 능..
[아침묵상 – 에스겔 16장 1-63절] 에스겔 16장은 워낙 적나라하고 원색적인 비난의 메시지로 가득해서 읽어 내려가기 거북스러울 정도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심판이 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과하지 않다며 하나님의 심판을 변증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죄를 더 돋보이도록 강조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원색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장에서 받은 은혜에 대한 의리를 강조하는 메시지만 읽고 지나가면, 말씀 묵상이 교회의 조직관리 방식에 대한 합리화의 수준에 머무르게 됩니다. 말하자면, 받은 것이 있으면 뱉어내라는 식의 헌금강조와 주일성수 강조로 메시지가 축소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의리를 강조하는 것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편협한 말씀 ..
[아침묵상 – 에스겔 14장 12-23절]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신다’는 메시지는 개신교 교회의 강단에서는 크게 강조되지 않아 왔지만, 성경 전체에서는 중요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에스겔서는 이 메시지가 자주 선포되는 책입니다. 개신교 교회가 이 메시지를 강조하지 못한 까닭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에 성경을 끼워맞추려 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이 행위를 강조하는 것을 두고 '그들이 구약시대의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둘러대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각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는 메시지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기근, 짐승, 칼, 전염..
[아침묵상 - 에스겔 14장 1-11절] 포로들 가운데 있던 지도자 몇 명이 에스겔에게 조언을 구하러 왔습니다. 8장에서는 에스겔을 찾아온 지도자들에게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말씀이 선포되었는데, 14장에서는 그 지도자들의 죄악에 관한 말씀이 선포됩니다. 그들이 마음속에 우상을 잔뜩 품고 있으므로, 그 우상숭배의 정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포되는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러 오기 전에 먼저 너희 자신의 죄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온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욕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했던 것과 같은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선지자들은 백성의 지도자들이 자문하러 ..
[아침묵상 – 에스겔 13장 1-23절]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비판을 가장 신랄하게 한 사람은 예레미야입니다. 그는 눈물의 예언자이자 논쟁의 예언자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별일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닥쳐올 ‘별 일’을 선포하느라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기도 했습니다. 불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장 호응이 좋은 말은 ‘별일 없을 거야’, ‘다 잘될 거야’가 아닐까요? 세상은 분명히 별일 많고 어지러운데, 그 혼란의 무게가 너무 크고 개인들이 감당하기 어렵다보니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말이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해 주어야 합니다. 소망을 잃지 않도록,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해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위로자의 은사와 사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