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새벽말씀나눔 (543)
천천히 걷자
[아침묵상 – 다니엘 1장 1-21절]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고기를 거부하고 채식을 했다는 얘기는 잘 알지만,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다니엘이 채식이 육식보다 훌륭한 건강식임을 증명했다는 식으로 엉뚱하게 꿰맞추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채식에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육식 거부 이유는 첫째, 채식이 몸에 좋아서가 아니라 왕궁의 모든 고기가 제사장들의 손을 거치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바벨론 왕궁의 고기는 야훼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에게 바쳐졌던 제물이기 때문에 그들이 주는 고기를 거부했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둘째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먹어서는 안 되는 부정한 고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낙타, 사반(바위너구리), 토끼, 돼지, 뱀장어, 악어 등..
[아침묵상 - 에스겔 47장 13-23절] 현대인들은 땅을 일터로 대하기보다는 부동산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땅의 분배에 관한 말씀에 대한 느낌이 옛날 사람들이 받았을 느낌과는 사뭇 다를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땅은 부동산이 아니라 생명의 터전입니다. 그곳은 누군가가 가족을 이루고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삶의 필수요소입니다. 농경사회에서 땅을 잃었다는 것은 살아갈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희년법에서는 어떤 이유로 남의 땅을 소유하게 되었든지, 희년이 되면 돌려주라고 명령합니다. 땅은 “돌아갈 곳”이기 때문입니다(레25:10). 그리고 땅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상은 레위기 25장 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
[아침묵상 – 에스겔 46장 1-24절] 모세오경은 왕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 배경이라서 제사 때 왕의 역할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에스겔은 왕이 제사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왕은 제사에 드려질 제물을 수납하는 역할(45:16)과 그것을 분류하여 제사 때 사용하도록 준비하는 역할(45:17)을 할 뿐 아니라, 안뜰 문간에 서서 제사를 참관하기도 합니다(2절). 이런 내용은 이스라엘이 정치적 공동체가 아닌 신앙적 공동체임을 표방하고, 신정공동체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는 부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의 시대로부터 약 2,50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상식적으로 우리가 아는 국가와 종교의 긍정적인 관계는 서로 관여하지 않는 관계입니다. 따..
[아침묵상 – 에스겔 45장 1-25절] 에스겔은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섬기는 도성이 되어야 함을 선포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받은 계시의 핵심이며, 그 도시가 추구할 수 있는 다른 어떤 목적보다 더 우선권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45장에 등장하는 각 구역의 면적을 합하면 현대 예루살렘시의 면적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그리고 직사각형과 정사각형으로 계획된 새 예루살렘의 구조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모양이기도 합니다. 이 비현실적인 도시 계획은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나타냅니다. 이 도시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데 필요한 적절한 조처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왕에게 부여된 넓은 토지는 왕들이 부정부패에 빠지지 않게 하는 보호장치 역할을 합니다(8-9절). 지배자들이 백성을 속이고 강탈하여 부를 축적하는 ..
[아침묵상 – 에스겔 44장 15-31절] 40장 이후로 에스겔에게 주어진 계시는 포로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를 대비한 말씀들입니다. 앞에서 성전과 제단에 관한 말씀들이 주어진 후에, 44장에서는 제사장에 관한 말씀이 주어집니다. 여기에서는 제사장의 자격(15-16절), 제사장이 지켜야 할 규정들(17-27절), 제사장에게 허락된 몫(급여)(28-31절) 등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제사장으로 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어떤 이유로든 사사로운 이익이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지킨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제사장은 성전에서 기타 업무를 수행하는 레위인들과 엄격하게 구분됩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고위직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성전의 고위직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자들에게 맡겨..
[아침묵상 – 에스겔 43장 13-27절]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를 눈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라면, 제단은 하나님과 실질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예배의 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제단에 관한 환상은 예배 준비에 관한 계시로 이해하면 좋을 듯합니다. 제단의 크기가 커지고, 3층 탑 같은 모양에 계단까지 갖추는 등 그 형태가 달라졌습니다. 분명히 에스겔이 25년간 바벨론에 살면서 그들의 거대한 문명에 영향을 받은 결과일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대체로 이 제단에 관한 계시가 바벨론의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생각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지상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연상되지 않고, 순수하게 천상에서 내려온 이미지여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기독교인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아침묵상 - 에스겔 43장 10-12절] 에스겔 40장부터 42장까지는 성전의 규모와 형태를 세세하게 묘사하는 환상 속의 계시를 기록합니다. 이 계시의 기본적인 의미는 40장 1절의 숫자에 감춰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겔40:1) 25라는 숫자는 희년(50년)을 바라보는 중간지점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에서 희년은 빚 때문에 땅을 잃고 종살이 하던 사람들을 다시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는 해입니다(레25:10).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진 빚(죄)를 탕감받고 다시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 희년을 기대하며 소망을..
[아침묵상 – 에스겔 38장 1-23절] 이스라엘의 멸망은 그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이고,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회복하기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의 사역이라는 것이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말씀입니다. 그러나 마른 뼈가 되살아나듯, 부러진 막대기가 서로 이어지듯, 그렇게 회복된 이스라엘의 평화는 완전한 평화는 아닙니다. 여전히 위협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그들의 침략이 예견되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침략자들은 항상 북쪽에서 내려옵니다. 아시리아도 바벨론도 북쪽에서 내려왔고, 이제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신 가상의 적도 북쪽에서 내려올 예정입니다. (반면에 남쪽의 이집트는 의지처이거나 피난처로 인식되곤 했습니다.) 에스겔 38장과 39장은 이 북쪽의 침략..
[아침묵상 – 에스겔 37장 15-28절] 하나님께서 갈라진 민족을 하나 되게 하신다는 본문 말씀은 오랫동안 분단으로 고통받으며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부족국가에서 왕정국가로 전환한 이후, 잠깐 한 나라를 이루었다가, 멸망할 때까지 300년이 넘는 세월을 두 나라로 존재했습니다. 그러니 ‘분단’이라는 말이나 ‘갈라졌다’라는 표현이 맞는지 어떤지도 잘 모를 지경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두 나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해 보이는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를 하나님께서는 굳이 하나가 되도록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들이 공통되게 섬기는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자신들의 공통된 조상으로 섬기지만, ..
[아침묵상 - 에스겔 37장 1-14절]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바짝 마른 뼈처럼(2절) 인생의 깊은 골짜기에 버려지듯이 놓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에스겔이 목격한 골짜기는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모여있는 절망의 골짜기, “어두운 죽음의 시대” 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절망 가운데에 희망이 있느냐고 물으셨을 때 에스겔이 ‘저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처럼(3절), 때로는 억지로 공허한 희망을 외쳐대는 것보다 절망을 있는 그대로 시인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되살아난 군대’는 떠돌이 목동들에게 보여준 ‘약속의 땅’처럼 비현실적인 희망입니다. 근거 없는 희망은 근거 없는 자신감처럼 때로는 위험한 것이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어두운 절망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