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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에스겔 43장 10-12절 본문

새벽말씀나눔

6월 24일 에스겔 43장 10-12절

Easywalking 2019. 6. 24. 07:38

[아침묵상 - 에스겔 43장 10-12절]

  에스겔 40장부터 42장까지는 성전의 규모와 형태를 세세하게 묘사하는 환상 속의 계시를 기록합니다. 이 계시의 기본적인 의미는 40장 1절의 숫자에 감춰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겔40:1)

 

  25라는 숫자는 희년(50년)을 바라보는 중간지점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에서 희년은 빚 때문에 땅을 잃고 종살이 하던 사람들을 다시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는 해입니다(레25:10).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진 빚(죄)를 탕감받고 다시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 희년을 기대하며 소망을 품게 하려고 25년째 해에 말씀이 선포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에서 14라는 숫자는 다윗(דָּוִד)을 암시합니다. 히브리어는 각각의 알파벳이 숫자로도 사용되는데, 다윗의 이름의 철자는 각각 ד (6)ו (4)ד(4)라는 숫자로 풀이되고, 합하여 14라는 숫자를 이룹니다. 이 숫자는 하나님께서 소망을 주실 때 다윗의 왕국에 대한 소망도 함께 주신다는 의미를 절묘하게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에 관한 말씀은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소망의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지는 소망의 성전이  '부끄러워하는 자들'을 위한 예배처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제사라는 말은 조상을 기억하고 복을 비는 행사를 의미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제사는 속죄를 위한 예식이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부정함이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마치 벌금을 내듯이 제물을 바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형식적인 속죄를 지속하다 보니, 사람들이 죄를 부끄러워하는 대신 죗값만 치르면 그만이라는 편리한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듯합니다. 이것은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인데, 판사가 무죄라고 선고하면 정말 자기가 무죄인 듯 행동하고, 재판정에서 선고한 벌을 받으면 자기 죗값을 다 치른 것처럼 생각해버리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형식적인 속죄를 더이상 용납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계시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선포할 때 그들이 부끄러워하는지를 살펴보고 선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1절).

 

  죄를 짓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세대, 재판에서 이기기만 하면 분명한 죄도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세상, 이런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 있습니다.

 

  판사에게 하나님의 자리를 내어주지는 마십시오. 권력의 힘으로 판사들마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에서 이겨야 무죄가 아니라, 각자의 양심에 따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 때 진정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 법정의 판결이나 다른 누구의 생각에 의지하지 말고, 자기 신앙의 양심에 따라 세상과 자신을 판단하는 “신령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 2:15)

 

 

[에스겔 43장 10-12절]

10 인자야 너는 이 성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이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11 만일 그들이 자기들이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성전의 제도와 구조와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12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 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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