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새벽말씀나눔 (543)
천천히 걷자
[아침묵상 – 아모스 7장 1-17절] 선입견은 사람이 공정하고 정확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되곤 합니다. 특히, 정치적 선입견은 매우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하기 때문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정치적 입장이 서로 다른 경우에는 큰 다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정치적 입장이 서로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사람들은 대체로 옳고 그름이 아닌 유불리를 대화의 기준으로 삼게 됩니다. 그래서 정치적 대화에는 프레임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마련이고, 정당한 것이라도 아군에게 불리한 주장과 정보는 자연스럽게 배제되곤 합니다. 이렇게 서로 정치적인 대립이 배경에 깔린 상태에서 정의나 진리를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듣는 사람들이 선입견을 바탕으로 듣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하는 사..
[아침묵상 – 아모스 6장 1-14절]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누리는 태평성대를 자랑하며 축배를 들고 있었지만, 성령에 힘입어 예리한 눈으로 시대를 읽어낸 예언자 아모스가 보기에는 그들의 행위가 멸망에 이르는 안일함이었습니다. 1절에서 시온의 ‘교만(솨아난, שַׁאֲנָן)’이 곧 안일함이고, 사마리아인들의 ‘마음 든든함(빠타흐, בָּטַח)’도 그들의 신앙적인 안일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로보암2세 시대에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들의 풍요는 주변국들과 비교했을 때 보잘것없는 풍요였습니다(2절). 특히 블레셋의 도시들은 넓은 영토를 지배하지 않더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스라엘보다 발전된 문명과 풍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축배를 들며 사치를 일삼는 것은(4-..
[아침묵상 – 아모스 5장 18-27절]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게 되는 까닭은 현실을 잘못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현실을 지나치게 비관하거나 혹은 낙관하고 있는데,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잘못된 잣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신앙을 점검하는 기준은 모세의 율법이어야 했습니다. 율법은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야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주춧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신앙을 율법이 아닌 주관적 공로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예배와 집회에 대한 출석률(21절), 헌금과 교회 봉사(22절), 뜨거운 통성기도와 찬양(23절) 등을 ..
[아침묵상 – 아모스 4장 1-13절] 벧엘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만남이 시작된 곳이고, 길갈은 가나안 땅의 역사가 시작된 곳입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제단을 쌓은 곳이 벧엘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12지파의 기념비를 세운 곳,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운 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새로운 국가의 시작을 선포한 곳이 길갈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벧엘에서 범죄하고 길갈에서 죄를 더했다’(4절)는 말씀의 뜻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어그러뜨리는 죄를 지었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침마다 희생제물을 드리고 삼일마다 십일조를 바치고 수은제와 낙헌제를 드리는 일을 자신들의 기쁨으로 삼았다는 말씀은(5절) 정말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아침묵상 – 아모스 3장 1-15절] 성경에서 예언자는 예지자(혹은 점치는 사람)와 선명하게 구분됩니다. 단순히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아맞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원인을 밝히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십니다(6절). 앞으로 일어날 일을 구체적으로 알아맞히고 묘사하는 일은 예언자에게 요구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언자들은 오히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시를 쓰듯이 두리뭉실하게 묘사해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세세한 부분에서 예언이 들어맞았느냐 그렇지 않았냐는 예언자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권위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앞일과 일치하지 않는 예언이 있습니다. 12절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메시지가..
[아침묵상 – 아모스 2장 6-16절]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인류가 처절하게 깨닫게 된 한가지는 한 사회의 물질적 풍요가 거기 속한 사람들의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익숙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자신이 쓸모 있다고 느낄 때 삶의 의미도 함께 얻게 되며, 누군가와 서로 존중하는 관계에서 소통하고 있을 때 내면의 힘을 얻게 됩니다. 바울 사도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한 까닭은 하나님과의 소통이 신앙인의 힘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부자나라에 살고 있더라도 존중받지 못하고, 의미 있는 일을 찾지 못하고, 중요한 존재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로보암2세의 시대에 이르러 전에 없는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그..
[아침묵상 – 아모스 1장 3절 – 2장 5절] 아모스는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기 전에 주변의 일곱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먼저 선포합니다. 이에 관한 분명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기 나라가 아닌 곳에서 듣기 싫은 메시지를 선포하려다 보니 듣는 사람들이 받을 충격을 완화할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이스라엘을 사방팔방으로 감싸고 있는 나라들이 각자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인 이스라엘이 자기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억울하거나 분하지 않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유다를 제외한 여섯 나라(다메섹,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 모압)의 죄는 ‘잔인함’ 혹은 ‘무자비함’..
[아침묵상 – 아모스 1장 1-2절] “정의가 강물처럼 평화가 들불처럼 사랑이 햇빛처럼 하나님 주신 생명 보듬어 ... ” 류형선님의 찬양곡 「희년을 향한 우리의 행진」의 첫 소절입니다. 이 노랫말은 곧장 아모스 5장 24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5:24)라는 구절은 군부독재가 이 나라를 다스리던 어두운 시절에 무한 반복으로 묵상 되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던 귀중한 말씀이었습니다. 아모스는 불의와 부정부패에 민감한 선지자로서 풍요가 낳은 부패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예언자입니다. 여로보암2세가 다스리던 북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절을 보내던 중이었는데, 그 풍요가 감사의 근원이 된 것이 아니라 죄악의 근원..
[아침묵상 – 요엘 2장 1-17절] 선지자 요엘이 대언하는 “여호와의 날”은 최후의 심판에 관해 흔히 알려진 이미지 그대로 무섭고 위협적인 날입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천지를 뒤흔드는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등장하며(5절), 그 위압감이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의 빛을 가릴 정도입니다(10절). 여호와의 날이 이처럼 위협적인 모양으로 나타난 이유는 분명합니다. 도무지 하나님께 돌아올 줄 모르는 백성들에게 심판의 실재(實在)와 실제(實際)를 일러둠으로써 마음을 돌이켜 여호와께 돌아올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화감을 조성하여 폭력적인 방식으로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것은 상당히 거북스러운 일입니다. 특히나 수준 높은 인문/사회과학을 섭렵한 현대인들에게 이런 방식의 회개요청은 격한 거부와 경멸의 대상이 ..
[아침묵상 – 호세아 14장 1-9절] 회개란 자아 성찰을 통해 득도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죄를 깨달음으로써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식하고 그 깨달음과 인식을 통해 온전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지속적인 거듭남의 과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물론, 깨달음은 깊을수록 좋고, 인격은 온전할수록 좋을 것입니다. 깨달음이나 인격 같은 것을 다 필요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오직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모든 신앙적 연단의 과정, 특히 회개와 같은 거듭남의 과정에서 절대로 생략될 수 없는 핵심이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돌아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돌아감에는 과거의 잘못들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단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