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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걷자
다윗이 왕이 되었던 시절에는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을 잘 관리하여 백성들이 기근이나 전쟁으로 입는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일조는 오늘날 세금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들을 자기 곳간에 채우고 사적으로 착복한 것이 아니라, 그 제물들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다시 되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처럼 권력을 남용한 제사장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패한 제사장들은 자리를 오래 보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함부로 남용한 왕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예언자들을 통..
하나님의 궤(=여호와의 궤, 법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중요한 상징물이었습니다. 법궤의 중요성은 그것의 신성한 효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기록된 말씀의 내용에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돌에 적혀 있는 말씀의 내용보다는 법궤의 신통력에 더 집중하곤 했습니다. 그런 미신적인 기대는 곧바로 배신당합니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법궤를 들고 와서 블레셋과의 전쟁에 임하지만, 그 둘도 죽고 법궤도 잃어버리지 않습니까? 그러나 법궤는 또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의 말씀의 능력을 증거하는 징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법궤가 아무 곳에나 방치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스돗의 다곤 신전에서 있었던 일이나, 블레셋 땅 전역에서 종기가 발생하는 것과 같은 사건들은 하나..
거룩한 성 시온, 예루살렘은 수비에 적절한 지리적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다윗이 이 성을 공격하러 갔을 때, 여부스 사람들이 ‘너 정도는 맹인과 절름발이만으로도 막아낼 수 있다’하고 약을 올린 것은 괜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이 성이 공격하기 어려운 성이었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780m 정도의 고지에 주변이 모두 산악지대인 이곳은 주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만으로는 유지가 어려운 척박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기혼의 샘이라고 알려진 지하수로가 있어서 물 공급이 원활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포위를 당해도 버텨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지리적 조건을 가진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다윗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적어도 빨리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서 영토를 넓혀야 겠다는 생각은 ..
다윗과 아브넬의 관계는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적대적인 적군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와 북한과의 관계 같은 그런 원수관계는 확실하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무례함에 화가 나서 다윗에게 투항했을 때, 서로 긴 얘기가 필요 없이 순식간에 합의가 이루어졌던 것이 분명합니다. 다윗이 아브넬의 투항을 받아주는 조건은 딱 한가지였습니다. 자기 아내인 사울의 딸 미갈을 데려오라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합병을 모두가 반겼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압은 아브넬이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일 때문에 앙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아브넬에 대한 이간질을 시도했으나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자기 손으로 직접 아브넬을 죽이게 됩니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자신이 악감정에..
사울은 길보아산 전투에서 그의 세 아들과 함께 전사하고 맙니다.(삼상 31장) 다윗은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활의 노래”라는 추모의 노래를 지어 헌정합니다.(삼하 1장)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사무엘을 통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향해 나아갑니다. 왕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나서게 된 것입니다.(삼하 2장) 하지만 처음부터 온전한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유다 지파 사람들만 다윗을 왕으로 추대했고, 나머지 북쪽의 지파들은 사울 왕조를 섬겼습니다. 사울의 군사령관이었던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고 자신이 실권을 장악함으로서, 사울왕가와 다윗왕가가 서로 대립하는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립은 어이없게도 이스보셋의 실수와 그에 따른 아브넬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종..
다윗과 그의 일행 600명은 블레셋이 일으킨 전투에 참여하러 갔다가 거절당하고 돌아옵니다. 다윗으로서는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만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와보니 아말렉 사람들이 빈집털이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죽자 사자 아말렉 사람들의 뒤를 쫓아서 그들로부터 모든 것을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힘겹게 일을 마치고 났더니 이제 내부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못난 사람들이 일어나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리품을 분배하지 말라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기 싫어서 안한 것이 아니라, 너무 긴 행군에 지쳐서 그만 낙오하고 말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때 다윗이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발언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해서 이긴 것 같습니까? ..
아비가일은 성경에서 현명한 여인의 모범으로 제시되는 여인 중 한명입니다. 그녀는 자기 밖에 모르는 철없는 남편을 위해 자존심과 품위를 모두 내던지고 땅바닥에 엎드림으로써 집안을 지켜냈습니다. 그녀의 이런 헌신에도 불구하고 남편 나발은 심장마비로 돌연사 해버립니다만, 그 일이 또 다른 계기가 되어 아비가일과 다윗이 서로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기도 합니다.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이 반전 스토리는 다윗이라는 인물이 지닌 중요한 장점을 드러내주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이 사울과 달리 신앙적 행위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울은 “왜 제사는 제사장만 드려야 해? 시간 약속도 안 지키는데!” 혹은, “어차피 버릴 거, 병사들이 좀 쓰게 하면 어디가 덧나?” 하는 식으로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
다윗이 왜 사울을 죽이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두 가지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다윗이 직접 말하는 대로, 사울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종이었다는 점입니다. 다윗이 사울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개인적인 감정과 욕심보다 신앙적 행위를 더 크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성급하게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사울은 무너지고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왕에게 두 번씩이나 자비를 베풀면서 인내한 다윗은 일어서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다윗이 사울의 목숨을 자기 손으로 취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매우 현실적인 근거들로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정계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되는’ 초년생입니다. 그런 ..
성경은 우리에게 자신이 뭐하는 사람인지,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남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자주 보여줍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이것저것 모든 일을 다 잘하려고 하거나, 기분에 따라 오락가락 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혹시 성공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거나 이용만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사무엘이 자신에게 기름을 부은 이후로 줄곧 자신이 서야 할 위치에 대해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본문에서처럼 블레셋에게 침략을 당한 그일라를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군대를 움직이는 모습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됩니다. (심지어 그일라 사람들은 자기들을 구해준 다윗을 사울에..
마음의 중심이 무너진 사람은 다른 모든 것이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무너진 마음을 회복하기를 포기하고 감정이 이끄는대로 질주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울의 행동은 인간의 절망, 즉 마음이 무너진 인간의 비인간성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울은 불안과 절망으로 인해 의심의 수렁에 빠져들었고 그 헤어 나올 수 없는 의심의 수렁에 갇혀서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살육하게 됩니다. 사울은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게 된 탓을 남들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다윗이 반역자가 틀림없는데 신하들과 심지어 자기 아들 요나단마저 사울 편이 아니라 다윗 편이라고 분통을 터뜨립니다. 하지만 요나단과 신하들은 다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