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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걷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모든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우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녀가 그렇게 추앙받는 것은 자신의 어려움을 기도를 통해 이겨내는 놀라운 믿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요소인데, 한나는 질투심 많은 브닌나에게 괴롭힘까지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심한 우울함 때문에 밥도 먹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한나를 많이 사랑했던 남편의 위로 덕분에 밥은 먹을 수 있었지만, 마음의 괴로움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그 때 한나는 그 괴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남편이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대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응답함을 얻어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고 음식도 편안하게 먹을 수 있게 됩니다...
[룻기 3장] 3:10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우리가 삶의 질적 향상을 이루고자 할 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다양한 아이디어나 현란한 개인기가 아니라 꼭 필요하지 않은 욕망을 절제하는 능력인 것 같습니다. 남들이 가진 것은 다 가지고 싶은 마음, 혹은 남들과 비교했을 때 어느 한 가지도 지고 싶지 않은 마음. 이런 종류의 욕망들은 단기적으로는 우리를 자극해서, 바쁘게 움직이게 만듦으로서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되게 만드는 효과를 낳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한정된 에너지와 시간을 “그 뭔가 있어 보이는 듯 한 느낌”을 유지하는 데 소비하도록 부추김으로서 결국 우리를 절망..
룻은 남다른 신앙적 결단을 내리고, 나오미와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살고자 타향살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만일 룻의 행실이 소문에 미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예를 들어, 시어머니를 따라오긴 했는데, 막상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짐덩이 같은 존재였다면? 아마 사람들은 룻이 결단을 내린 것이 믿음의 용기에 따른 것이 아니라 허망한 객기를 부린 것이었다고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결단은 성실이라는 배후세력이 없으면 씨 없는 열매나 다름없게 됩니다. 당장은 멋있어 보이지만 그 이상의 결실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과 훌륭한 행동도, 연속성이나 지속성이 없다면 그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꼭 어떤 성공신화를 이루기 위해서만 성실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가치 있는 일을 시작했다면..
룻이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가기로 결심한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현대인들의 눈으로 보아도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따라 낯선 땅으로 이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옛날 사람들의 눈으로 보자면 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이 없는 과부는 어떤 위협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에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의무적으로 아내로 맞이해야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했던 이유는 여자가 혼자 살게 되면 그만큼 큰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시선에서 보자면 정말 웃기는 풍습이지만,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풍습이었습니다. 나오미가 진심으로 마음아파하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11-13절). 룻은 매우 큰 위험을 무릅쓰고 나오미와..
[사사기 19-21장] 기브아에 사는 베냐민지파 사람들이 못 할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전체가 그 죄인들을 응징하기 위해 모였는데,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괸당을 보호한답시고 죄인들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쟁이 벌어졌고, 베냐민지파는 600명의 남자만 남고 몰살당하는 참변을 당하게 됩니다. 같은 편에서 죄가 있는 사람을 보호해주게 되면, 내적으로는 사기가 올라가게 됩니다. 죄지은 사람도 보호해줬으니 죄 없는 사람은 당연히 더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말은 사실 뻔합니다. 안팎으로 공정하지 못한 사회는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베냐민지파가 겪은 사건은 폐쇄적인 집단이기주의의 최후를 보여줍니다.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자기에게는 두..
입다는 출생배경이 너무나 좋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보스기질의 소유자였고, 어느 무리에 속하든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리더였으며, 과감한 결단력과 실행력을 갖춘 능력자였습니다. 만일 입다가 자신을 박대하고 쫓아냈던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의 칼날을 갈았더라면 그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옛 원한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예비하신 자리임을 분명하게 깨달았고(11장29절), 그래서 에브라임이 도전해 왔을 때에도 전력을 다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임하였습니다(12장 1-6절: 기드온처럼 여유 있게 응대하기에는 입다는 가진 것이 너무나 적었습니다). 하나님의 부..
본문과 비슷한 내용을 담은 성경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상당히 감정변화가 심하시고 때로는 줏대마저 없으신 것 같은 느낌을 주게 됩니다. 보통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라고 하던데 어찌된 일일까요? 하나님께서 질투하신다거나, 분노하신다는 말씀, 혹은 오늘 본문처럼 속상해서 삐지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들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을 벌레나 무생물, 짐짝처럼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잘하거나 잘못한 부분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분풀이를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위한 반응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 가능하도록 하시기 위한 반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중을 받..
아비멜렉은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해 자신의 배다른 형제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그는 이 추악한 일을 위해 자신의 괸당 뿐 아니라 깡패들까지 끌어들였습니다. 그 결과 목적한 바를 이루었고, 3년 동안 왕으로서 권세를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흘리게 한 피의 값들이 고스란히 그의 머리에 돌아갔고, 그와 함께 악행을 도모한 세겜 사람들은 요담의 예언(9장 7~21절)대로 불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아비멜렉은 데베스에서 여인이 던진 멧돌에 맞아서 죽게 되었는데, 죽기도 바쁜 그 시점에 자존심을 세우느라 ‘여자 손에 죽었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며 한 청년에게 자기를 찔러달라고 합니다. 이 우스꽝스러운 죽음은 사람이 인생에서 진정으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 줍니다. 야고보서 ..
1) 에브라임의 자격지심과 기드온의 지혜(1-3절) 자격지심이 심한 사람은 함께 일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자격지심이 심하면 매사에 불만이 많은데, 왜 그런 불만을 품게 되었는지 이해가 잘 안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의 불만이 그 이유가 타당하고, 또 해결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제기 된다면 아무리 자주 불만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합리적인 불만들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발전시켜주는 불만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에브라임처럼 자격지심이 심한 사람들의 불만은 달래주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습니다. 밑 빠진 독처럼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런 불만족이기 때문입니다. 자격지심이 심한 사람들을 대하는 기드온의 지혜를 배워봅니다. “네가 더 잘났는데,..
“세 번의 계시, 한 번의 전투” 본문의 사건에 제목을 붙여본다면 위와 같은 제목이 어떨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이 전투에 앞서 세 번의 계시를 받습니다. 첫 번째는 양털과 이슬(6장 36-40절), 두 번째는 3백인의 특공대 선발기준(7장 1-8절), 세 번째는 보리떡 한 덩이의 꿈 해몽(7장 9-14절)입니다. 마지막 계시 사건이 압권입니다. 답안지 유출 수준의 계시가 주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디에서도 기드온의 신중함을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기드온의 성격과 관계없이 이미 기드온이 자신의 믿음을 확증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의심을 나쁜 것으로 가르쳐 왔고, 그와 더불어 신중함도 도매금으로 같이 넘겨버리곤 해왔습니다. 무조건 믿는 신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