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걷자
9월 25일 열왕기하 1장 1-8절 본문
[열왕기하 1장 1-8절]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5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하니
6 그들이 말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7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아합의 뒤를 이은 아하시야는 뭘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난간에서 떨어져서 병상에 눕게 됩니다.
이 사건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이고, 아하시아에게는 더 이상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하시아에게 생명을 연장할 기회는 없었을지 몰라도, 죄를 짓지 않을 기회는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상황이나 일이 우리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 조급함 앞에서 어떤 사람은 인내와 연단의 기회를 발견하고, 어떤 사람은 우상숭배의 유혹에 빠져들게 됩니다.
아하시아가 귀신의 왕(혹은 ‘파리 대왕’)에게 자신의 운명에 대해 물어보려 했던 것도, 빨리 결과만 알고 싶어하는 조급한 마음이 만들어낸 행동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신앙인들 중에는 아하시아처럼 하나님을 알고 믿으면서도 점쟁이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조급함이 우리를 죄의 길로 인도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분의 선하심에서 비롯됩니다.
이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조급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 일이 잘되든 잘못되든 결국 세워지는 것은 사람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혹은, 조금 마음이 급하더라도 인내와 연단의 계기로 삼을 줄 압니다.
신앙인은 구원의 소망의 투구(살전5:8)를 쓰고 살아가는 사람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엘리야를 보고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부르시기 직전까지도 목숨을 걸고 그분의 말씀의 대언자가 됩니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해도 좋을 법한 시점에 이르러서도 말씀에 사로잡힌 예언자의 직분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은 자기 사명에 대해 이처럼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하겠습니다.
잘 되고 못 되고가 기준이 되면 조급해질 수밖에 없고,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잘되든 못되든 주님의 명령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육신은 고달파질 수 있지만, 영혼은 평화를 얻게 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결과는 여러분의 몫이 됩니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육으로 뿌린 사람은 육으로 거두고, 영으로 뿌린 사람은 영으로 거두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엘리야의 소명을 받아서 사는 신앙인이 되기 바랍니다.
조급한 마음 때문에 점치는 신앙인이 되지 말고, 확신 가운데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참고>
∎ 바알세붑 : 아하시아가 자기 생명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던 바알세붑은 신약성경에 바알세불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마12:24, 눅11:18). 바알세붑이나 바알세불이나 글자의 뜻은 ‘파리의 대왕’입니다. 윌리엄 골딩이라는 작가의 소설 ‘파리대왕’은 이 바알세붑의 이름을 딴 제목입니다.
∎ 아하시야가 떨어진 다락방 난간 : 고대 이스라엘의 집은 우리 조상들의 집과는 구조 자체가 달랐습니다. 성경에 다락방이라고 나오는 부분들은 사실은 다락방이 아니고, 그냥 2층에 있는 방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1층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살림을 하거나 짐승을 키우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마구간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집 밖의 외양간이 아니라 집 안의 1층에 있는 마굿간이었을 것입니다.(사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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