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걷자
9월 26일 열왕기하 2장 7-14절 본문
[열왕기하 2장 7-14절]
7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성령의 능력: 닉부이치치의 삶을 통해 진정한 성령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갑절의 성령의 능력’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그 어려운 부탁은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내용이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들어 올리시는 것을 엘리사에게 보게 하시면 응답받을 것이고, 보지 못하게 하시면 응답받지 못한다는 대답이 그러한 내용이 되겠습니다.)
엘리사는 왜 그렇게, 어떻게 보면 터무니없어 보이는 부탁을 하게 된 것일까요?
엘리사의 입장에 서서 말씀을 묵상해보니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엘리야는 위대한 사역자였습니다.
그를 가까이에서 모시던 모든 제자들은 그를 하나님의 사자로 여겼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위대한 인물의 뒤를 이어야 하는 엘리사의 마음은 당연히 무겁고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내가 당신이 감당하던 일을 이어받으려면 적어도 당신보다 두 배는 더 큰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겠습니다.”하고 요청하게 된 것 아닐까요?
자신을 끝까지 “평신도”로만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시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신앙생활입니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핑계대면서 끝까지 손님노릇만 하다 가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런 분들은 하나님께 책망 받았던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자리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께서는 1)믿음 안에서 자기 소명을 발견하시고, 2)제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엘리사처럼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소명은 꼭 거창한 것일 필요가 없고, 그 능력은 꼭 휘황찬란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 성령의 은사는 사람들에게 뭔가 대단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재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은사가 진정으로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라면, 그 은사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하는 능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 은사는 꼭 특정한 방식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옷으로 물을 쳐서 갈라지게 해야 성령의 능력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엘리사에게 성령의 능력이 엘리야보다 갑절이나 더 크게 필요했던 이유는, 그가 목이 곧은 백성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간구해야 하는 이유는, 교회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랑이나 하고, 사람 숫자나 불려보려고 은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자기 자신이 복음의 진리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 위해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고, 다른 이에게 복음의 진리를 믿게 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아무리 엄청난 기적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없으면 무의미한 푸닥거리일 뿐이고,
사람들 눈에는 별 것 아닌 재주로만 보일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고백하게 만들 수 있으면 성령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사람은 사랑 받을 때 마음을 열게 됩니다.
사랑을 표현하거나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진심은 통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신실하신 것이어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사랑하심을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랑, 우리를 품어 안으신 그 사랑이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워서, 그 사랑을 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제자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며, 성령의 은사를 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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