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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예레미야 1장 1-19절 본문
[예레미야 1장 1-19절]
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3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시드기야의 십일년 말까지 곧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혀 가기까지 임하니라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15 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6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17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
18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19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는 역사의 지각변동이라고 부를 만한 거대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대에 하나님의 소명(召命)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가 겪은 가장 중요한 사건은 예루살렘의 멸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던 성전이 무너진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이름 뜻 그대로 하나님이 일어서신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이 뜻을 전하는 메신저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결국 그들의 멸망을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전하는 사명은 매우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기분 나쁜 예언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저하는 예레미야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5절).”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9절)”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8절).”와 같은 말씀을 예레미야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는 꼭 필요한, 그러나 어려운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종을 격려하시는 츤데레 하나님의 모습이기도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예레미야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독특하게도 언어유희를 통해 표현되었습니다. 11절과 12절에는 살구나무 환상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를 보여주신 후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여기 등장하는 살구나무는 그 나무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나무의 이름을 언어유희를 통해 메시지의 도구로 사용한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환상을 통해 전하신 말씀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네가 솨케드(살구나무, שָׁקֵד)를 보느냐? 제대로 보았다. 내가 쇼케드(지켜봄, שֹׁקֵד)하고 있노라.”
비슷한 발음을 연달아 사용함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의미를 더 강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짱이 같은 인간이 어디서 배짱이야?)
하지만 예레미야를 부르시는 사건을 통해 우리가 배우게 되는 가장 중요한 신앙적 교훈은 예레미야의 겸손과 순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모습은 모든 훌륭한 하나님의 종들의 공통된 모습입니다.
예레미야 역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잊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대언해야 하는 말씀이 사람들의 미움과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이지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사명을 감당하는 순종하는 종의 모습이 예레미야에게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진리의 종이며, 정의과 평화의 종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것들을 우리에게 요청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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