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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일 이사야 29장 1-14절 본문
[이사야 29장 1-14절]
1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2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그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3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너를 에워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4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이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이리라
5 그럴지라도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날려 가는 겨 같으리니 그 일이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날 것이라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7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 곧 아리엘과 그 요새를 쳐서 그를 곤고하게 하는 모든 자는 꿈 같이, 밤의 환상 같이 되리니
8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 시온 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같으리라
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11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12 또 그 책을 글 모르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니라
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14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아리엘(אֲרִיאֵל)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정확하게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리’(אֲרִי)라는 단어가 사자(lion)라는 뜻이기 때문에, 창세기 49장 9절(유다는 사자새끼로다...)을 참조하여 ‘하나님의 사자(lion)’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다만, 2절에서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에 있는 아리엘은 에스겔 43장 15절의 “번제하는 바닥”(아리엘, אֲרִאֵיל)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번제단의 바닥은 제물이 타고 남은 재와 기름 찌꺼기로 가득한 더러운 곳인데, 유다가 그와 같이 몰락하게 되리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5절부터 8절까지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의 공평하심에 관한 내용입니다. 비록 유다가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인해 이방민족에게 짓밟히는 신세가 되지만, 유다를 심판하는 도구가 되는 이방민족들 역시 자기들이 지은 죄만큼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하나님의 심판 의지는 확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눈을 가리고 덮으셔서, 그들이 계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하신다는 말씀은(9-12절) 유다의 죄가 너무나 심각해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시를 감추셔서 회개할 기회마저 박탈하신다는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이유는 분명합니다. 예루살렘의 백성이 하나님을 입으로만 섬기고, 마음은 멀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13절). 유다 백성들은 이제는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의 법에 따라 섬기지 않고 사람의 계명에 따라 섬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13절).
이 말씀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적용해보자면,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설 때, 마치 세상 법정에 서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말로 바꾸어 볼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법정에서 자기 죄를 먼저 실토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죄가 밝혀지면 그제서야 시인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명백하게 죄가 드러날 때까지 ‘모르겠다’ ‘생각이 안난다’ 등의 말로 회피하는 것이 기본 상식처럼 되어 있습니다. 청문회에 소환된 사람들이 보여주는 기본자세와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야 처벌을 조금이라도 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도 그런 마음 자세를 갖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우롱하는 일이 되어버리지 않겠습니까? 유다 백성들이 그와 같은 죄를 지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람의 지혜와 명철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을 비켜갈 수 있다고, 자기 죄를 변호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14절) 행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지혜와 명철을 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핑계 대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 그분이 우리의 모든 죄악과 허물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따르면, 그것을 잊고 하나님을 속이려는 태도 자체가 심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참된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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