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걷자

2월 9일 욥기 37장 1-13절 본문

새벽말씀나눔

2월 9일 욥기 37장 1-13절

Easywalking 2018. 2. 9. 06:50

[욥기 371-13]

1 이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떨며 그 자리에서 흔들렸도다

2 하나님의 음성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으라

3 그 소리를 천하에 펼치시며 번갯불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4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그의 위엄 찬 소리로 천둥을 치시며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를 멈추게 아니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놀라운 음성을 내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6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 비도 내리게 명하시느니라

7 그가 모든 사람의 손에 표를 주시어 모든 사람이 그가 지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8 그러나 짐승들은 땅 속에 들어가 그 처소에 머무느니라

9 폭풍우는 그 밀실에서 나오고 추위는 북풍을 타고 오느니라

10 하나님의 입김이 얼음을 얼게 하고 물의 너비를 줄어들게 하느니라

11 또한 그는 구름에 습기를 실으시고 그의 번개로 구름을 흩어지게 하시느니라

12 그는 감싸고 도시며 그들의 할 일을 조종하시느니라 그는 땅과 육지 표면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명령하시느니라

13 혹은 징계를 위하여 혹은 땅을 위하여 혹은 긍휼을 위하여 그가 이런 일을 생기게 하시느니라

 

 

 

 

사람이 인생을 살다보면 하나님이 나를 벌주고 계신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도 있고, ‘하나님께서 자연을 움직이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런 체험을 한번이라도 깊이 있게 하게 되면 하나님을 함부로 생각하지 않게 되고, 언행을 조심하게 됩니다.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말을 함부로 하고 행동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체험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 아무리 잘났어도 결국 불신자일 뿐이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엘리후가 욥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는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 당신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고 무죄하다고 여겨왔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진정으로 체험한 적이 없소. 만일 그런 체험을 했다면 당신은 두려워했어야 하오. 적어도 하나님을 생각할 때만큼은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러워 했어야 하오.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여대고 말았소. 이것이 당신의 불신자라는 증거요.’

 

본문 말씀은 우리가 이 세계에서 경험하게 되는 모든 현상들의 배후에는 우리가 도저히 깨닫지 못할 차원의 섭리(원리, 법칙)가 있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그 섭리에 대해 너무 경솔하게 아는 척하는 것도 죄가 될 수 있고, 또 교만하게 그 섭리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도 죄가 될 수 있는데, 욥의 죄는 교만이었습니다.

 

13절을 보시면 엘리후는 하나님의 섭리에 담긴 세 가지의 의미를 증언합니다. ‘징계를 위함, 땅을 위함, 사랑을 위함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쉽게 추측이 되는 이유들을 예로 들었을 뿐, 하나님의 섭리의 전부를 설명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이 세 가지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실 때 벌을 주시려고 하실 수도 있고, 자연 그 자체의 균형을 위해서 하실 수도 있고, 사랑하셔서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 그러실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짐작을 할 수 있을 뿐 완벽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나 자연현상을 통해서 계시를 받았다면, 그것은 계시 받은 사람에게 주어진 은사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일일 뿐입니다(7).

 

성마르게 하나님에 대해 아는척하려 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자기 삶에 던져주시는 의미들을 발견하는 일에 더 마음을 집중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보론> 땅을 위해서(13)

과거의 사람들처럼 자연재해에 대해 징벌의 차원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자연을 들어서 징벌을 내리기도 하시지만, 자연 그 자체의 균형을 위해 자연을 움직이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태풍이나 이상기후는 인간이라는 작은 피조물이 보기에는 재앙이지만, 자연의 입장, 즉 땅의 입장에서 보면 슬쩍 궁둥이를 움직이는 정도의 변화일 수도 있습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서 오래 앉아있으면 불편하니까, 살짝 자세를 바꾸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자연이 살짝 자세를 바꾸었을 때 하필이면 자연 앞에서 개미보다 더 작은 존재인 인간이 큰 피해를 입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함부로 하나님의 징벌을 운운하거나, 죄 없이 당했다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우리의 신앙과 영혼을 살찌게 하는 자세는 핑계대고 원망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런 변화 앞에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며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자세일 것입니다.

'새벽말씀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월 13일 욥기 42장 1-6절  (0) 2018.02.13
2월 12일 욥기 38장 1-7절  (0) 2018.02.12
2월 8일 욥기 36장 1-16절  (0) 2018.02.08
2월 7일 욥기 35장 1-16절  (0) 2018.02.07
2월 6일 욥기 34장 1-9절  (0) 2018.02.0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