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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역대상 15장 1-15절 본문

새벽말씀나눔

11월 3일 역대상 15장 1-15절

Easywalking 2017. 11. 3. 06:41

[역대상 151-15]

1 다윗이 다윗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전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하고 그것을 위하여 장막을 치고

2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

3 다윗이 이스라엘 온 무리를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여호와의 궤를 그 마련한 곳으로 메어 올리고자 하여

4 다윗이 아론 자손과 레위 사람을 모으니

5 그핫 자손 중에 지도자 우리엘과 그의 형제가 백이십 명이요

6 므라리 자손 중에 지도자 아사야와 그의 형제가 이백이십 명이요

7 게르솜 자손 중에 지도자 요엘과 그의 형제가 백삼십 명이요

8 엘리사반 자손 중에 지도자 스마야와 그의 형제가 이백 명이요

9 헤브론 자손 중에 지도자 엘리엘과 그의 형제가 팔십 명이요

10 웃시엘 자손 중에 지도자 암미나답과 그의 형제가 백십이 명이라

11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12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14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하게 하고

15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다윗과 사울의 중요한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법궤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났습니다. 사울은 재위기간동안 법궤를 가져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반면, 다윗은 다윗성이 정비된 후에 곧바로 법궤를 자기 곁으로 옮겨둡니다. 법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시는 역사를 상징하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축복의 언약을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성물이기 때문입니다.

 

성물과 우상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우상은 숭배의 대상을 직접적으로 형상화한 것이고, 성물은 예배의 대상이 되는 분을 기억하게 하는 상징적인 물건입니다. 성물은 그 자체로 어떤 효력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과의 전투에 법궤를 동원했지만 패배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궤는 하나님의 동행을 상징합니다. 법궤가 없어도 하나님은 계시지만, 법궤가 있으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되새기게 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는 성물을 가까이 두는 것과 멀리 두는 것은 차이가 많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성물을 멋대로 다루는 것과 정해진 법도에 따라 신중하고 진지하게 다루는 것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겠습니다. 다윗은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줍니다. 법궤를 멋대로 다루었을 때 베레스웃사의 사건이 일어났으므로, 법도를 잘 아는 레위인들을 소집하여 그들로 하여금 법궤를 옮기고 또 관리하도록 한 것입니다.

 

법궤를 대충 다루면 그것은 돌덩이가 들어있는 상자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법도를 지켜서 다루면 그 법궤가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나게 하는 성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일러주시려고 베레스웃사의 사건을 행하셨습니다. 법궤를 숭배하게 하려고 웃사를 죽이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책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법궤를 대하는 다윗과 레위인들의 자세를 닮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책이라는 성물에 매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성경책이 어떤 부적과 같은 역할을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소중하게 다루는 사람은 말씀가운데에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사는 사람이고, 이 책을 마구잡이로 다루는 사람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둘 사이에 당장, 그리고 겉으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 나중에 결과를 놓고 보면 다윗과 사울만큼의 차이가 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우리 개인의 입장에 따라 함부로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리가 곧 신앙은 아니지만, 다윗과 레위인들이 전통적인 율례를 지킨 것처럼 우리도 교리에 따라 성경을 이해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교리가 전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라 혼란과 무질서로 인해 베레스웃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설교자에게 더더욱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래서 강단에 서는 설교자는 교회의 법을 공부하고, 교회의 전통과 교리를 존중하며 연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배시간에는 아무나 강단에 올라가서 하고 싶은 얘기를 해서는 안 되며, 예배설교를 하는 설교자는 아무 얘기나 자기 생각대로 내뱉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하나님의 임재를 증명하는 사건이지, 인간의 사상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되 교회의 전통 즉 교리를 바탕으로 말씀을 이해하는 훈련을 소홀이 하지 맙시다. 자기 마음대로만 믿는 사람은 좌로나 우로 치우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치우침이 심해지면 웃사가 당한 화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믿음 안에서 중심을 잘 잡으시는 성도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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