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걷자
2월 1일 욥기 31장 35-40절 본문
[욥기 31장 35-40절]
35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
36 내가 그것을 어깨에 메기도 하고 왕관처럼 머리에 쓰기도 하리라
37 내 걸음의 수효를 그에게 알리고 왕족처럼 그를 가까이 하였으리라
38 만일 내 밭이 나를 향하여 부르짖고 밭이랑이 함께 울었다면
39 만일 내가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출을 먹고 그 소유주가 생명을 잃게 하였다면
40 밀 대신에 가시나무가 나고 보리 대신에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고 욥의 말이 그치니라
욥은 끝까지 자기의 무죄를 주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째는 자기가 받은 환난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친구들이 자꾸 죄를 고백하라고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욥에게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었고, 하나님이 죄 없는 자를 심판하고 계시다는 불평을 반복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그가 끝내 넘지 못한 신앙적 한계선이 되고 말았습니다.
욥은 29장에서 자신이 그동안 살면서 행한 선한 일들을 열거하고, 31장에서는 자기가 저지른 적 없는 잘못들에 대해서 열거합니다. 그는 매사에 자신 있는 사람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으며, 성실하게 선을 행하며 살아온 사람이 틀림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피조물은 사람 앞에 섰을 때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의 태도가 같아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의로운 사람도 자기 행위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참 생명의 길에 들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욥에게서는 사람의 작음과 하나님의 크심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신앙고백이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본래 욥의 한계가 거기였을 수도 있고, 너무나 괴롭고 혼란스러워서 알던 것을 잊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욥은 하나님께서 직접 치시기 전까지는 이 한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욥의 이런 한계가 사람은 아무리 훌륭해도 결국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다시 던지고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며, 참된 믿음의 고백만이 우리를 영으로 살게 하신다는 것을 욥을 통해 깨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소망은 내가 그동안 쌓은 선한 업적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작음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믿음 위에 섰을 때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말씀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 용기를 내어 살아갑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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