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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나눔

1월 29일 욥기 21장 7-16절

Easywalking 2018. 1. 29. 06:47

[욥기 217-16]

7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

8 그들의 후손이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9 그들의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들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10 그들의 수소는 새끼를 배고 그들의 암소는 낙태하는 일이 없이 새끼를 낳는구나

11 그들은 아이들을 양 떼 같이 내보내고 그들의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12 그들은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13 그들의 날을 행복하게 지내다가 잠깐 사이에 스올에 내려가느니라

14 그러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바라지 아니하나이다

15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구나

16 그러나 그들의 행복이 그들의 손 안에 있지 아니하니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멀구나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판단되는 상황 혹은 시점이 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순간에 그래도 기도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과연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욥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욥은 절망에 심취해버렸고, 결국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함께 보신 말씀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간추려집니다.

의인은 고통 받고 악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사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죽으셨거나 정의와는 거리가 먼 분이시다.’

 

이 원망과 비난의 기원은 욥의 절망입니다.

아직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원망하는 대신 자신에게 용기를 줄 누군가를 찾게 됩니다.

그러나 절망해서(넘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사람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원망을 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오늘 욥처럼 하나님의 선하심 자체를 근본적으로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맙니다.

 

욥이라는 사람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은 절망의 깊이가 아니라, 소망의 위력입니다.

소망이 있고 없고가 우리 믿음에 대하여 어떠한 영향력을 끼치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을 갖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 소망은 죽음마저도 넘어서게 하는 소망입니다.

이 믿음은 욥이 미처 얻지 못한 믿음이 되겠습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소망을 품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절망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원망과 불평과 저주의 말을 하게 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깨닫는다면, 절망이 아니라 소망을 품는 것이 우리 인생에 대해 얼마나 큰 힘을 가져다주게 되는지를 알 수 있겠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하느라 허비할 힘이나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그 힘으로 소망을 품고 믿음의 기도를 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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