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걷자

11월 28일 역대하 24장 15-22절 본문

새벽말씀나눔

11월 28일 역대하 24장 15-22절

Easywalking 2017. 11. 28. 06:31

[역대하 2415-22]

15 여호야다가 나이가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백삼십 세라

16 무리가 다윗 성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17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18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19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

20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21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22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마음의 교감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삶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뭔가를 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이 영적인 삶입니다.

 

하나님과의 교감은 무당이 신내림 하듯이 신기(神氣)에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방언처럼 특이한 은사가 있어야 하나님과 교감하는 것이라고 착각하시기도 하는데, 하나님과 교감의 증거는 거룩한 삶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고, 그분과 영적으로 교제한다는 것은 우리 인생이 뭔가 선하고 아름다운 방향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신앙적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삶은 절대로 억지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요아스 왕은 그것을 보여주는 극적인 실례입니다.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고모부의 눈치를 보면서 신앙을 지켰는데, 고모부가 죽자마자 우상숭배의 길로 빠져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아스 왕은 그동안 억지로 신앙생활을 해 왔던 것입니다.

 

누구나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억지로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요아스 왕처럼 배교할 위험이 너무나 큽니다. 요아스는 우상숭배의 길에 들어섰을 뿐 아니라, 자기 잘못을 지적하는 사촌 스가랴를(여호야다의 아들) 죽이기까지 합니다. 왜 그렇게까지 심하게 하나님과 고모부 여호야다를 배신하게 되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다친 상태로 침상에서 신하들에게 죽임당하고, 죽어서도 왕들의 묘실에 묻히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20절과 21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아무에게도 억지로 신앙생활을 강요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신앙생활은 자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전도하고자 하는 사람은 말보다 본이 됨으로써 하도록 노력합시다. 말로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만으로는 어렵습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 만들고 싶다면, 여러분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내가 억지로 하지 않더라도 때가되면 성령께서 인도하신다. 나는 다만 존중하고, 배려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며 그 때를 기다리면 된다.” 이런 믿음을 가지실 수 있기 바랍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