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욥기 11장 13-20절
[욥기 11장 13-20절]
13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14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15 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16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기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17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18 네가 희망이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며 두루 살펴보고 평안히 쉬리라
19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은혜를 구하리라
20 그러나 악한 자들은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들의 희망은 숨을 거두는 것이니라
1. 욥에 관한 사건으로 읽기
욥은 너무나 극심한 고통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나는 무죄하니 제발 이 고통을 거두어달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욥의 이와 같은 넘어짐은 비난받을 만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누구라도 욥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무너지지 않는다는 장담을 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긍휼의 마음으로 들어줄 필요가 있는 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욥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공감 능력이 제로에 가까운 사람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욥이 잠시 숨 돌릴 수 있도록, 욥의 편을 들어주고, 같은 말이라도 욥에 대한 위로에 더 무게를 둘 수 있었을 텐데, 한 치의 에누리도 없이 욥의 약점과 욥의 실수를 파고듭니다.
마음이 무너진 사람에게는 좋은 말도 비아냥거리는 말처럼 왜곡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 주어야 할 시점과 위로와 공감을 해주어야 할 시점을 구분하려면 상대방에 대해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누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관심을 가지려면 제대로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후자가 복에 겨워서 그런다고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누군가를 위로하려면 그 사람의 마음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무엇을 존중해주어야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2. 지혜의 말씀으로 읽기
소발의 말 역시, 그저 욥이라는 한 개인에게만 주어지는 인간적인 충고는 아닙니다. 소발의 말은 욥이 무너진 지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고, 무엇이 채워져야 하는지를 바르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욥은 지금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친구들의 모든 충고를 거부하고 있지만, 만일 우리가 정말로 신앙의 성장을 원한다면 우리가 당한 고난가운데에서 욥의 친구들이 하는 말들을 한번 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피조물들인지라, 고통스럽고 괴로우면 누군가 원망할 대상을 찾게 되고, 찾다 찾다 못찾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간혹 생각하기를 멈춰버린 채 내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알았다고 교만한 말을 내뱉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낮춰져서는 안 되는 분입니다.
연단이란 약한 부분을 보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고통과 두려움은 인간의 약점입니다. 이 약점이 우리를 무너지게도 하지만, 이 약점으로 인해 하나님을 찾게 되기도 합니다. 방향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한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에만 집중할 것인지, 선함과 성실함으로 승부하다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우시리라는 믿음에 집중할 것인지,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약점을 덮어두고 남들에게 가리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으로 인해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자비와 도우심을 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살게 하는 힘이며, 걷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