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나눔

1월 16일 욥기 6장 14-23절

Easywalking 2018. 1. 16. 06:47

[욥기 614-23]

14 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느니라

15 내 형제들은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그들은 개울의 물살 같이 지나가누나

16 얼음이 녹으면 물이 검어지며 눈이 그 속에 감추어질지라도

17 따뜻하면 마르고 더우면 그 자리에서 아주 없어지나니

18 대상들은 그들의 길을 벗어나서 삭막한 들에 들어가 멸망하느니라

19 데마의 떼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스바의 행인들도 그것을 사모하다가

20 거기 와서는 바라던 것을 부끄러워하고 낙심하느니라

21 이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

22 내가 언제 너희에게 무엇을 달라고 말했더냐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을 선물로 달라고 하더냐

23 내가 언제 말하기를 원수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폭군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아무리 좋은 말도 때와 장소를 맞추지 못하면 저주나 다름없는 말이 되고 맙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사람이 새겨들어야 할 귀한 잠언이지만, 이 말이 위로가 필요한 욥에게 떨어지자 저주보다 더 심한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욥은 엘리바스의 말에 깊은 상처를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이 낙심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더라도, 친구들만은 그를 이해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은 비겁하게도 욥의 편에서 욥을 위로해주지 않고, 모르는 사람처럼 욥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강하게 항변합니다.

내가 언제 너희들에게 도와달라고 했느냐? 너희가 지레 겁을 먹고 미리 연막을 치는구나! 너희들은 친구를 위로할 줄 모르는 변덕스러운 개울 같도다!’

본문 뒤에 이어지는 24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큰 고난은 사람의 마음에 큰 충격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당하는 사람이나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충격이 흡수되고 어느 정도 소화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좋은 친구는 그 시간을 같이 기다려주는 친구인 것 같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의 드라마에서 욥의 친구들은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욥이 지적하는 대로 욥이 당한 고난이 너무 큰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위로할 생각보다는 뭔가 욥에게 숨겨놓은 잘못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욥의 처절한 항변을 통해 중요한 것을 묵상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경말씀을 듣고, 신앙생활 가운데에 깨우침을 많이 얻더라도, 그래서 천사가 할 만한 귀하고 옳은 말을 할지라도, 그 말 안에 상대방을 진심으로 위하는 사랑이 없으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말이 된다는 점입니다.

 

때와 장소를 가려서 말을 하도록 합시다. 말에 가시가 돋쳐있는 사람은 아무리 유능하고 바른 사람이라도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우리의 모든 잘못을 하나님 기준에서 다 지적해버리신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말에 자비를 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더라도 욥기를 온전하게 소화하려면 드라마 잠언 의 두 줄기를 붙들고 욥기를 읽어야 합니다. 요즘말로 투 트랙 기법을 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