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욥기 1장 13-22절
[욥기 1장 13-22절]
13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14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15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6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7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8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19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훈련된 나’, ‘연습하고 노력해서 만든 나’는 진짜 나인가? 아니면 진짜 나는 따로 있고, 훈련된 나는 가식에 불과한 것일까?”
이런 주제에 깊이 몰입하다보면 ‘형이상학’이라는 학문의 한 분야에 이르게 되거나, ‘진아’를 추구하는 불교의 교리와 만나게 되는데, 성경에서는 이와 같은 주제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사람의 인생과 신앙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왜 성경은 이런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을까요?
그것은 성경이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결정을 인간의 사고력이 아닌 하나님의 창조에 맡겨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대로 말씀드리자면, ‘진짜 나’는 생각하고 찾는다고 해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보면 저절로 나타나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진짜 나)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욥이라는 사람은 훈련된 신앙 때문에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고, 그 성실함 때문에 하나님께 높이 평가를 받습니다. 그가 얼마나 신앙적으로 깊이 훈련된 사람인지는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21절)
욥은 지금 재산도 전부 잃고, 사랑하는 자녀들까지도 전부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그래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중심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을(비속어로 ‘멘붕 상태’) 상황에서 욥은 위와 같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 고백은 훈련된 고백입니다. 욥이 평소에 이런 믿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 믿음이 정말 너무나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저절로 그 입에서 튀어나온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해보면 그 사람의 밑바닥이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평소에 어떤 사람이었든, 정말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누구라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욥 역시도 친구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훈련된 고백 이면에 숨겨져 있던 자신의 마음의 바닥을 드러내고 맙니다.
그러면 지금 본문에 나타난 욥의 모습, 잘 훈련되고 절제된 모습은 사실은 아무 필요 없는 가식에 불과한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욥은 비록 정말로 참기 어려운 고통 때문에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지만, 그가 평소에 쌓은 신앙의 훈련과 연단이 그를 다시 하나님께 돌려세우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범사에 그를 인정하는 신앙이 지옥 같은 위기 상황에서 그를 다시 일으켜세웠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바닥에 숨어있는 못난 모습도 욥이고, 잘 훈련되고 견실한 모습도 욥입니다. 하지만 욥은 좋은 쪽을 선택하여 살았고, 그 선택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서 직접 욥을 찾아주셨을 때, 욥은 다시 새롭게 세워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신이 본래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만나주신다는 것과,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당신은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은 청동거울로 보는 것 같은 희미한 모습뿐이고, 언젠가 맞대고 보듯 만나게 되는 날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신앙은 깨달음 못지않게 기다림을 강조하게 됩니다.
욥은 그 기다림이 부질없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기초만 튼튼하다면, 비록 순간적으로 무너질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초를 튼튼하게 쌓을 수 있다면, 당신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