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나눔

11월 23일 역대하 18장 23-27절

Easywalking 2017. 11. 23. 06:34

[역대하 1823-27]

23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하는지라

24 미가야가 이르되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바로 그 날에 보리라 하더라

25 이스라엘 왕이 이르되 미가야를 잡아 시장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게로 끌고 돌아가서

26 왕이 이같이 말하기를 이 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난의 떡과 고난의 물을 먹게 하라 하셨나이다 하니

27 미가야가 이르되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된다면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고 또 이르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 하니라

 

 

 

 

이스라엘 역사에서 오므리-아합의 시대는 다윗-솔로몬의 시대에 버금가는 안정기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부강한 나라를 이루었다는 이유만으로, 즉 외적인 성공만으로 그들을 칭찬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어떤 성공을 이루었든, 그 성공은 신앙과 무관한 것이고 하나님과 무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그래서는 안되는 나라였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불러서 세우신 나라이고, 하나님께서 친히 백성으로 삼으신 나라입니다. 간단하게 보자면 의리의 문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나라의 기초가 세속적인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었기 때문에, 그 기초를 흔드는 순간 나라 전체가 요동치게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선지자들이 아합의 시대에 고난을 받았고, 오늘 본문말씀에 나오는 미가야 선지자도 아합왕에게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에 권력자들에게 빌붙어서 그들이 듣고 싶은 예언만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 같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하나님의 대언자라고 주장했지만, 아합의 시대에 대접받으려면 바알과 아세라 숭배를 용납해줬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대언자를 자청하면서 권력자의 편에서 우상숭배를 용납해준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대언자를 자청하면서 힘 있는 사람들의 불의를 감싸주는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묘한 말로 자신들의 불의를 감추려하지만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총회의 헌법을 무시하면서까지 세습을 추진한 명성교회와 그 주변의 목소리들입니다. 잘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기본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큰 규모를 유지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것에 매달리기 시작하는 순간 탐심의 우상숭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점치러 안가고, 절에 안 갔다고 우상숭배 안한 것이 아닙니다. 제사 때 절 안한다고 우상숭배 안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우상숭배는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탐심의 노예가 됐을 때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시대를 읽는 분별력을 얻어서,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