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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걷자
0에서 100까지 일직선으로 상승하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그런 줄 알면서도 인생에 굴곡이 생길 때마다 무슨 부정 탄 일이 없었는지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오늘 나의 하루를 예견하게 하는 행복 혹은 재앙의 징조를 발견해보려고 두리번거리는 불안한 마음도 비슷한 류의 미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마음이 근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으면 자연스럽게 미신적 사고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면 뭔가 뜻대로 잘 안 풀릴 때마다 ‘아, 그때 그 일 때문에 부정탄 것 같아!’라며 자책하거나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집트로 피난 간 유다 백성들이 그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여왕”에게 떡이라도 한 ..
응답받을 내용을 미리 정해두고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의 뜻은 무시하고 능력만 요구하는 무속적 기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듣고 싶은 말만 듣겠다는 태도로 이어지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 앞에서 오만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다랴가 이스마엘의 손에 죽게 된 후에 사태의 수습을 위해 의논하던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미 자기들의 뜻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한 것입니다. 그것도 무슨 말이든 예레미야가 대언하는 대로 순종하겠다는 약속까지 하면서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래놓고 예레미야의 예언이 자기들의 뜻과는 다르게 나오자,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리가 없다고 하면서 예레미야를 무시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은 예레미..
사반의 증손자 그다랴가 바벨론에 의해 유다의 총독으로 세워진 것은 바벨론의 입장에서는 신중하게 고려한 인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반은 요시야왕의 개혁에 깊숙이 참여했던 서기관이고, 요시야왕은 이집트의 파라오 느고에게 죽임을 당했으므로, 사반의 증손자가 이집트에 대해 무조건적인 호의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다랴가 그 자리에서 오래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도록 하는 정황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선, 오랜 농성전과 패배의 후유증, 바벨론의 잔인한 전후처리 등으로 유다 사람들의 감정이 격해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바벨론 왕이 유다의 왕 시드기야에게 한 일은 유다인들에게는 깊은 상처와 분노를 남겼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벨론의 지배를 순순히 받아들이자고 주장하는 지도자..
외롭고 험난한 길을 자기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꿋꿋하게 걸어가는 신념의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만 해도 어렵고 힘든 세상에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집과 신념은 말 그대로 ‘한 끗 차이’인 경우가 많기에 쉽게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어떤 사람이 살아오면서 행한 말과 행동을 인생의 방정식에 대입해 보면 그 사람이 그저 고집스러운 사람인지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인지 구분해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오늘 하나의 중요한 선택을 통해 자신의 신념의 진실성을 입증합니다. 바벨론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에게 세 가지 선택지를 넘겼을 때, 그동안의 행적과 궤도가 일치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바벨론으로 가는 길은 그동안의 고생..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대항하여 1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농성을 합니다. 예루살렘이 수비하기 좋은 성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성안의 백성들이 단합해주지 않았다면 그처럼 긴 시간 동안 버텨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즉, 시드기야 정권은 적어도 예루살렘 성에서는 지지받는 노선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싸워보기도 전에 포기하라고 선포하고 다니던 예레미야 같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부질없는 전쟁으로 국민을 희생시키지 마라. 이집트는 바벨론을 이길 수 없으니 바벨론이 자멸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 하는 등등의 주장을 하나님의 뜻이라며 선포하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친 바벨론파로 분류될 만한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포위 되기 전, 이집트 군대가 올라오고 바벨론 군대가 일시적으..
예레미야가 당한 고난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자들이 기득권을 쥐고 있을 때, 정직하게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당하게 되는 고난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갇혀있다가 나와서 목숨이 위태한 상황에서도 고지식하게 자기가 본 진실의 대변자 역할을 합니다(17절). 28장에 등장하는 예언자 하나냐의 손자인 이리야가 예레미야를 잡아 가둔다는 기록을 보면(13절), 무너져가는 기득권을 지켜보려고 끝까지 악을 쓰며 반대자들을 짓밟는 일단의 정치 모리배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나 이미 역사의 수레바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는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막내 동생 살룸(여호아하스)을 붙잡아간 것이 이집트 사람들이었음을 기억했어야 합니다. 바벨론보다 이집트의 멍에..
유다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던 예레미야는 성전에도 마음대로 못 올라갈 정도로 견제를 당하고 있었습니다(5절). 하지만 그가 처절하게 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던 것은 아니고, 바룩과 같은 동역자가 있었으며, 심정적으로나마 그의 사역을 지지하는 고관들도 있었습니다(19절). 여호야김 제4년은 BC605년입니다. 이 해는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이 애굽의 느고를 갈그미스 전투에서 대파한 해입니다. 이는 바벨론이 당시 세계에서 최강자의 자리를 굳히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연히 바벨론의 속국이 되었고, 여호야김은 조공을 바치며 바벨론의 지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았고, 여호야김 왕은 통치 5년째(BC604년) 아홉째 달에 금식일을 선포하며 이 난국을 헤쳐나갈 길을 ..
‘레갑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가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문에 요나답(여호나답, 왕상10:15)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 가문의 후예들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초대했습니다. 이 때 초대받은 사람들은 우리식 족보로 치자면 시조는 레갑이고 중시조는 요나답인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은 매우 독특한 사람들이었는데, 집을 짓지 않았고 농사를 짓지 않았으며,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랑생활을 한 것이 분명한데, 유목민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보게 되기도 합니다. 이들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나 정보는 없습니다. 그들이 누구냐 하는 문제보다 중요한 점은 그들의 삶이 예루살렘의 백성들과 철저하게 대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들의 조상..
성경에는 평등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여러 가지 형태로 평등에 대해 가르치는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는 사람이 평등하게 살기 위해 어떤 경제적 실천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노예법(출21:2, 신15:12)과 희년법(레25:13)입니다. 성경의 노예법은 이스라엘 사람이 동족을 6년이 넘게 종으로 부릴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너무 오래 종살이를 하느라 그 생활에 익숙해져 버리면 나중에는 자기 스스로 자유인이 되는 것을 포기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이 법은 동족에게만 한정된 법이니 평등사상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흑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때가 언제인지를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예레미야가 붙잡혀 갇히게 된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왕과 예루살렘을 향해 선포한 예언들은 모두 유다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자기 백성을 저주하는 그야말로 “이적행위”에 해당하는 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진화된 민주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에서도 여전히 권력을 쥔 자들이 언론통제를 시도하는 것을 보면, 언론통제는 권력의 생리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2천 5백 년 이상 된 옛날에, 팔레스틴 지역의 산간 도시국가에서 언론통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레미야가 권력자들에게 당했다는 사실에 흥분하기보다는, 그가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불구덩이에 몸을 던졌다는 사실에 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