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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 사무엘하 23장 8-17절 본문

새벽말씀나눔

8월 25일 사무엘하 23장 8-17절

Easywalking 2017. 8. 25. 06:45

 

 

 

[사무엘하 238-17] (표준새번역)

8 <다윗의 용사들;대상11:10-47> 다윗이 거느린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다. 첫째는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인데 그는 세 용사의 우두머리이다. 그는 팔백 명과 싸워서, 그들을 한꺼번에 쳐죽인 사람이다.

9 세 용사 가운데서 둘째는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이다. 그가 다윗과 함께 블레셋에게 대항해서 전쟁을 할 때에, 이스라엘 군인이 후퇴한 일이 있었다.

10 그 때에, 엘르아살이 혼자 블레셋 군과 맞붙어서, 블레셋 군인을 쳐죽였다. 나중에는 손이 굳어져서, 칼자루를 건성으로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주께서 그 날 그에게 큰 승리를 안겨 주셨으므로, 이스라엘 군인이 다시 돌아와서, 그의 뒤를 쫓아가면서 약탈하였다.

11 세 용사 가운데서 셋째는 하랄 사람으로서, 아게의 아들인 삼마이다, 블레셋 군대가 레히에 집결하였을 때에, 그 곳에는 팥을 가득 심은 팥 밭이 있었는데,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 군대를 보고서 도망하였지만,

12 삼마는 밭의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그 밭을 지키면서 블레셋 군인을 쳐죽였다. 주께서 그에게 큰 승리를 안겨 주셨다.

13 수확을 시작할 때에,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평원에 진을 치니, 삼십인 특별부대 소속인 이 세 용사가 아둘람 동굴로 다윗을 찾아갔다.

14 그 때에, 다윗은 산성 요새에 있었고, 블레셋 군대의 진은 베들레헴에 있었다.

15 다윗이 간절하게 소원을 말하였다. "누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나에게 길어다 주어, 내가 마실 수 있도록 해주겠느냐 ?"

16 그러자 그 세 용사가 블레셋 진을 뚫고 나가, 베들레헴의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와서 다윗에게 바쳤다. 그러나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길어 온 물을 주께 부어 드리고 나서,

17 이렇게 말씀드렸다. "주님, 이 물을 제가 어찌 감히 마시겠습니까 ! 이것은 목숨을 걸고 다녀온 세 용사의 피가 아닙니까 !" 그러면서 그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이 세 용사가 바로 이런 일을 하였다.

 

 

 

영웅이 탄생하면 사람들은 신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그 영웅이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보통사람과 다른 신성한 능력이나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큰 제국의 왕과 황제들은 사람들의 그런 심리를 이용해서 자신들이 신의 아들이라고 선포하거나, 자기 자신이 신이라고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러한 우상숭배를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만일 다윗이 그런 잘못을 범했다면 그는 사울처럼 버림받은 왕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며, 이스라엘을 일으킨 왕으로 기억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란 가나안 땅에 세워진 어떤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세우시고 직접 인도하시는 나라와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다윗의 업적이 다윗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다윗과 함께 한 사람들의 모든 위업은 하나님의 도우심 덕분이었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다윗의 인생이 마무리 되어가는 시점에서, 다윗이 참여한 전쟁들과 다윗이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다윗을 보좌했던 용사들에 대해 기술하고, 그들을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것을 주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웅이 혼자 큰일을 이루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영웅 신화는 허상입니다.

영웅을 숭배하거나 영웅이 되어보려는 환상에 빠지지 말고, 영웅적인 인물이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진정한 배경이 무엇이었는지를 발견할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이 일은 사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 되겠습니다.

 

성경은 그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잘한 점만 쓰고, 못한 점은 감추어주는 우상화, 신화화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대략 3천 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서 그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이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왕이란 그저 전쟁을 지휘하는 지휘관이나, 법을 집행하는 판사 정도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고 살릴 권력을 지닌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권력을 지닌 왕이 신하들 앞에서 반성을 하는 모습이나, 예언자의 비판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성경에 기록해 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왕이시며, 사람은 아무리 위대한 자라도 그 분 앞에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확고한 인식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본문에서 다윗은 자기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가 급히 반성하고 자기 잘못을 시인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유혹에 빠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 용사들이 목숨을 걸고 구해온 물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높임을 받는 왕이 된 것은, 그가 거대한 제국을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이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왕이지만 높임을 받은 고레스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업적 때문에 높임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의 업적이란 아무리 위대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티끌만도 못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웅담에 빠진 사람(영웅적인 사람의 업적을 아무데서나 늘어놓고, 과장된 사실들을 그대로 믿어버리며, 영웅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등의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그 자체로 우상숭배의 덫에 걸린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아직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미 죽은 어떤 대통령을 위해 산당을 짓고, 동상을 세우고, 수백억을 들여 추모공원을 세우려고 할 뿐 아니라, 그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은 무조건 좌경용공이라고 몰아세우는 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허탄한 신화로부터 자기 마음을 지킬 분별력을 얻기 위해 기도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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