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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사무엘하 19장 40절~20장 2절 본문
[사무엘하 19장 40절~20장 2절] (공동번역)
<19장>
40 왕은 길갈로 건너갔고 김함도 왕과 함께 건너갔으며, 유다의 모든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 왕을 모셔 건너갔다.
41 그때 보아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왕께 나아와 말하기를 "어찌하여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왕을 도둑질하여 왕과 왕의 가족과 왕의 모든 사람들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가게 하셨습니까?" 하니,
42 유다의 모든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에게 대답하기를 "왕께서는 우리의 가까운 친척이시기 때문이다. 너희가 왜 이 일로 분노하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먹었느냐? 아니면 왕께서 우리에게 무슨 선물을 주셨느냐?" 하므로,
43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다 사람들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며, 또한 다윗에 대하여도 우리가 너희보다 더 관계가 깊은데 왜 너희는 우리를 멸시하느냐? 우리 왕을 모셔오자고 처음 말한 사람이 우리가 아니냐?" 하였으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다.
<20장>
1 그때 그곳에 불량배 하나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세바이며 베냐민 족속 비그리의 아들이었다. 그가 뿔나팔을 불며 말하기를 "다윗에게는 우리의 몫이 없으니,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업이 없다. 이스라엘아, 각자 자기의 장막으로 돌아가자." 하니,
2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을 따르다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라 올라갔으나, 유다 사람들은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자기들의 왕 다윗을 떠나지 않고 따라갔다.
다윗은 처음부터 유다지파를 지지자로 확보하는 일보다, 가능한 많은 이들을 품어안으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친척이자 사령관이었던 아브넬을 약간의 조건만 충족되면 받아들이려고 했었던 것이고,
압살롬을 지지하며 따랐던 이들에 대해서도 강력한 숙청대신 포용하는 노선을 취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무작정 끌어안기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윗 쪽에서 아무리 끌어안으려고 해도, 사람들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자의 편에 붙어서 그 권리를 함께 누리는 데에 익숙해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궁지에 몰려있을 때는 집안에 숨어서 사태를 관망하다가, 승자가 다윗으로 결정되자 비로소 집밖으로 나와서 자기 권리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백성들의 속성이 이러하다는 것을 비로소 뼈저리게 간파하게 됩니다.
왕국을 한 마음, 한 덩어리로 만드는 일은 자기 혼자만의 노력으로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고, 백성들은 더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의 편이 아니라 더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의 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전쟁에서 이긴 직후에 유대지파에게 따로 사람을 보내서 ‘괸당소집령’을 내립니다.(19장 11-12절)
별다른 떡고물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흔들림 없이 자신을 지지해줄 사람들을 찾게 된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로 묶어 보려했던 다윗의 노력을 인정하고, 그를 지지해 주었더라면 다윗이 유다지파를 따로 부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자의 편, 승자의 편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통합정신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승자에게서 떨어지는 떡고물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유다지파 사람들이 ‘우리는 다윗에게 아무것도 얻어먹은 것이 없다. 그저 괸당이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는 것뿐이다.’(42절)하고 말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것입니다.(43절)
다윗이 신앙적 가치를 중심으로 사람을 모으지 못하고, 핏줄에 의지해서 자신의 지지세력을 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의 비극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괸당을 편애하는 듯이 보이는 다윗을 비판하기 전에, 이 비극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다윗이 먼저 유다지파를 편애했기 때문에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이 세바의 꼬임에 넘어가서 반역을 저지른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됩니다.
이미 이스라엘 각 지파의 사람들이 분열의 씨앗을 자기들 안에 품고 있었기 때문에 세바의 말이 힘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을 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수준이 낮은데, 왕이 혼자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이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이스라엘을 하나로 묶는 일에 힘을 쏟고자 하더라도, 자기 목숨이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반란이 일어났는데 어느 한 지파도 다윗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승자가 결정된 다음에야 비로소 나서서 자기 몫을 요구하는 상황을 보면서,
다윗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화평, 평화는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화목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한 몸 신앙을 고백하고, 화목함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그 어느 누구도 신흥교회를 화목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아무도 양보하지 않는데, 누가 화해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이 아니라 다윗 할아버지가 와도 안 되는 것입니다.
신흥교회가 한 몸,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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