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걷자
8월 21일 사무엘하 19장 1-15절 본문
[사무엘하 19장 1-15절] (표준새번역)
1 <요압이 다윗에게 항의하다> 왕이 목놓아 울면서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는 소문이 요압에게 전해졌다.
2 그래서 모든 군인에게도 그 날의 승리가 슬픔으로 변하였다. 왕이 자기의 아들 때문에 몹시 슬퍼한다는 소문이, 그 날 모든 군인에게 퍼졌기 때문이다.
3 그래서 그 날 군인들은, 마치 싸움터에서 도망쳐 나올 때에 부끄러워서 빠져 나가는 것처럼, 슬며시 성 안으로 들어왔다.
4 그런데도 왕은 두 손으로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로, 큰소리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 하고 울부짖었다.
5 마침내 요압이 집으로 왕을 찾아가서 항의하였다. "임금님, 모든 부하가 오늘 임금님의 목숨을 건지고, 임금님의 아들들과 딸들의 목숨도 건지고, 모든 왕비의 목숨과 후궁들의 목숨까지 건져 드렸습니다. 그런데 임금님께서는 오히려 오늘 부하들을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6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임금님을 반역한 무리들은 사랑하시고, 임금님께 충성을 바친 부하들은 미워하시는 겁니까 ? 우리 지휘관들이나 부하들은 임금님께는 있으나마나 한 사람들입니까 ? 차라리 오늘, 압살롬이 살고, 우리 모두 죽었더라면, 임금님께서는 더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시다면,
7 이제라도 일어나 밖으로 나가셔서, 임금님의 부하들을 위로의 말로 격려해 주십시오. 제가 주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만, 지금 임금님께서 밖으로 나가지 않으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임금님 곁에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임금님께서, 젊은 시절부터 이제까지 당한 그 모든 환난보다도 더 무서운 환난을 당하실 것입니다."
8 그러자 왕이 일어나서 성문으로 나와 앉았다. "임금님께서 성문에 앙b아 계신다 !" 하는 소식이 모든 부하에게 전해지니, 모든 부하가 왕의 앞으로 나아왔다. <다윗의 귀환 준비> 그 사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도망하여, 저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9 이스라엘 백성은 지파마다 서로 의논이 분분하였다. "다윗 왕은 우리를 원수들의 손아귀에서 구해 주었다. 블레셋 사람의 손아귀에서도 우리를 건져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압살롬을 피해서 이 나라에서 떠나 있다.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세운 압살롬은 싸움터에서 죽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다윗 왕을 다시 왕궁으로 모셔 오는 일을 주저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
11 온 이스라엘이 하는 말이 다윗 왕에게 전달되었다. 다윗 왕은 두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유다 장로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 주시오. 그들이 어찌하여 왕을 다시 왕궁으로 모시는 일에 맨 나중이 되려고 하는지,
12 그들은 나의 형제요, 나의 골육지친인데, 어찌하여 왕을 다시 모셔 오는 일에 맨 나중이 되려고 하는지, 물어 보기 바라오.
13 그리고 아마사에게는, 그가 나의 골육지친이면서도,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 사령관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벌을 내리시더라도, 내가 달게 받겠다고 하더라고 알려 주시오."
14 이렇게 다윗이 모든 유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같이 자기쪽으로 기울게 하니, 그들이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는 부하들을 모두 거느리고, 어서 빨리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15 다윗 왕이 돌아오는 길에 요단 강 가에 이르렀는데, 유다 사람들이 왕을 맞이하여 요단 강을 건너게 하려고, 이미 길갈에 와 있었다.
어떤 일은 그 사람의 입장에 서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똑같은 경치가 보는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것처럼, 사람의 일도 보는 사람의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어른들에게 항의할 때, 어른들이 종종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도 아이 낳아서 길러봐라.”
어른의 입장,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지혜롭게 역지사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기 입장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의 입장에 서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작은 일에서든 큰일에서든 이 입장의 차이 때문에 서로 마음이 상하거나 불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갈등은 입장 차이 때문에 생겨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 이해하거나 용납하기만 하면 금방 해결될 문제도, 자기 입장을 고수하기 시작하는 순간 해결 불가능한 복잡한 문제로 둔갑해 버리곤 합니다.
다윗과 압살롬의 갈등도 좁게 보자면 입장 차이에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모든 아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압논의 잘못을 생각했고,
압살롬은 다말과 한 어머니 아래에서 난 형제의 입장에서 압논의 잘못을 생각했습니다.
이 차이는 결국 끝까지 극복하지 못한 차이로 남았고, 거대한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요압과 다윗의 입장 차이는 개인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요압의 입장과, 국가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다윗의 입장이 서로 대립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갈등은 요압이 사울의 장수 아브넬을 죽였을 때(3:27)부터 본격화되었고, 요압이 압살롬을 직접 죽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욱 분명한 입장의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으며,
오늘 본문 이후에 요압이 아마사를 죽이는 사건(20:17)에 이르러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한 차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요압은 솔로몬이 아닌 아도니아를 지지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왕상 2:28)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요압은 자기 식구들 생각만 합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바람에 우리 식구들이 전쟁에서 이기고도 기를 펴지 못하며, 꼭 내놓은 자식 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강력하게 항의 했습니다.
이 주장은 얼핏 보면 굉장히 일리 있고, 타당한 주장 같지만,
이후에 다윗이 취한 행동들을 살펴보면 요압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이 단지 압살롬 개인만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다윗 왕국 안에 이미 균열이 있었고, 그 틈을 압살롬이 교묘하게 비집고 들어가서 잠시나마 쿠데타에 성공했던 것임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에 이기고도 반역자들을 처단하는 일에 몰두하기보다 왕국의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 대통합의 길을 제시합니다.
반역자들의 군대 수장인 아마사를 자신의 군대 수장으로 삼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요압의 입장에서는 이른바 “밥그릇”을 빼앗기는 일로만 인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요압은 더 큰 하늘이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오직 자기 눈에 보이는 하늘만 유일한 하늘이라고 믿고 살았던 것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대놓고 슬퍼한 것은 꼭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이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윗이 그렇게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철없고, 생각 없는 왕이었다면 그처럼 큰 성공을 거둘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압은 다윗의 입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수로서는 훌륭한 사람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는 오직 자기 앞가림만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압살롬을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이고, 압살롬을 위해 슬퍼하는 다윗 왕에게 강력한 항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속 좁은 행동이 요압 자신의 말년을 비참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자기 우물의 하늘이 하늘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불화의 씨앗을 안고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 눈으로만 하늘을 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지혜, 성령의 눈, 성령의 들을 귀를 얻기 위해 간구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새벽말씀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 23일 사무엘하 19장 40절~20장 2절 (0) | 2017.08.23 |
---|---|
8월 22일 사무엘하 19장 16-23절 (0) | 2017.08.22 |
8월 18일 사무엘하 16장 15-23절 (0) | 2017.08.18 |
8월 17일 사무엘하 14장 25-33절 (0) | 2017.08.17 |
8월 16일 사무엘하 12장 15-23절 (0) | 2017.08.16 |